▲ ⓒ김대중평화센터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10일 밤 별세했다. 김대중평화센터 관계자는 "이 여사께서 10일 오후 11시37분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소천하셨다"고 전했다.

이 여사는 일제 강점기 때 이화여고와 이화여전을 졸업하고 여성 운동을 한 신여성이었다. 김 전 대통령과 결혼한 뒤 47년간 옥바라지와 망명, 가택연금 등 정치적 고초를 함께 겪은 김 전 대통령의 평생 동지이자 정치적 조언자였다.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부인’으로 기억되지만, 그의 삶의 궤적을 추적해보면 강인한 사회운동가이자 여성운동가를 만나게 된다. DJ가 이룬 민주화 운동의 업적에서 이 여사의 조력도 크게 작용했다. 이 여사는 DJ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였다.

야당 정치인의 아내로서 삶은 순탄치 않았다. 결혼한 지 9일 만에 김 전 대통령이 반(反)혁명에 관계되었다는 이유로 당국에 연행됐다. 유신 시절 남편의 옥바라지를 하는 등 가장 가까운 정치 조언자로서 영욕을 함께 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71년 대선 후 치러진 총선에서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치게 된 데 이어, 일본에서 반(反)유신 투쟁 중이던 1973년에는 '김대중 납치 사건'을 겪기도 했다. 1976년에는 '3·1 민주구국선언' 사건에 연루돼 5년형을 구형 받고 옥살이를 했고, 1980년 5월에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1982년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미국으로 망명했으나, 1985년 귀국해 가택연금을 당했다. 이 여사는 이 모든 일을 감내하며 김 전 대통령 곁을 지켰다.

DJ는 1983년 미국 망명 시절에 샌프란시스코에서 강연하던 중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아내가 없었더라면 내가 오늘날 무엇이 되었을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오늘 내가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내 아내 덕분이고, 나는 이희호의 남편으로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나는 그것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 여사를 설명할 때 DJ를 먼저 떠올리지만, DJ는 자신의 삶을 설명할 때 아내를 앞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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