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 혼(魂)을 파는 화가 임경숙 ...

▲ 순수미술의 대가 임경숙 화백

인생을 한편의 ‘장편드라마’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어떤 배역을 맡고 싶어 할까?

아마도 예술 쪽으로 많은 이들이 참여하고 싶어질 것 같다.

하지만, 예술의 세계는 그리 만만치 않은 곳이다. 왜? 이쪽세상은 혼을 팔아야 하는 곳이다. 魂 팔수 있습니까??

여기 혼을파는 예술인이 있다. 순수미술의 대가 임경숙 화백...

문학가이자 예술가인 임경숙화백을 만나 그의 그림세계에 대해 일문일답을 들어보자.

Q. 사회생활의 첫 직업 또는 했던 일이 궁금합니다.

A. 저는 호기심이 많아서 인생을 모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벨기에 신부님이 운영하시는 사회봉사단체에서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청소년에게 기술교육을 시키고 생활지도를 하는 일을 했습니다.

Q. 그게 대략 어느정도, 몇 년도 입니까?

A. 1980년에서 1982년 프랑스 떠나기 전 까지입니다.

Q. 화백님께서 서양화를 하고 계시는데 서양화를 선택한 동기는 무엇입니까?

A. 저는 어려서부터 예술가를 꿈꿨어요. 그래서 막연하게 그림을 그린다는 생각보다는 해남에서 태어나서 저녁노을이 바다에 빠지는 것을 보면서 저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글이든 그림이든...

그래서 아주 어려서부터 예술가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프랑스에 가서 주말마다 미술관을 다녔거든요. 가서 보니까 색체는 굉장히 빨리 공감을 나누잖아요. 글보다 더 빨리... 그래서 그림쪽으로(선택을했습니다.) 또 패션도 같이 공부했지만 제가 의상을 해보니까 팔려야한다는 비즈니스 적인 것이 강한데 표현은 사실은 그런 압박없이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것 그런점에서 서양화가 매력인 것 같습니다.

Q. 화백님은 일찍부터 서양에서 그림공부를 배우셨고 활동하셨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A. 대부분은 공부를 하려고 유학을 떠나지만 저는 같은 경우에는 첫사랑 때문에 떠났어요. 손목도 잡아보지 못했지만 그 사람이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니까 편지만 하면 뭐하느냐 그래서 떠나야지 했더니 그 사람으로서는 얼굴 한번밖에 안봤기 때문에 부담이 돼서 무작정 오면 어떻겠느냐 그래서 제가 사실은 나라를 바꿔서 돌고 돌아서 프랑스로 간거같아요.

Q. 외국에서 공부한다는 것이 외롭고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어떠셨는지요?

A. 집에서는 제가 그 사람이 공부하는 미국쪽을 생각을 했다가 미국에 가지않고 남미와 독일을 거쳐 프랑스로 갔거든요 그러니까 비행기값이 떨어지기 전에 오라고했는데 집에서 학비를 도와준다는 보장도 없었고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그런 각오가 들었어요. 그런데 다행히 프랑스 도착 일주일안에 아르바이트 자리가 생겼습니다. 프랑스에서 제일 힘든 것이 숙식이 비싼 것인데 마침 어떤 아이가 8개월만에 태어나서 먹고자면서 그 아이 목욕시키고 미역국 끓이는 일을 했어요. 그러다보니까 내가 사랑 때문에 왔지만 이제는 내 자신을 찾아야 된다. 라는 그런 각오 때문에 열심히 살았고, 어느땐 먹을게 없어 중국 가게에서 버린 배추를 주워먹기도 하고... 정말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Q. 화백님의 그림은 서양화지만 국내에서 상당히 획기적일 만큼 독특합니다. 전체적인 그림의 소재는 어떻게 구상하시나요?

A. 옛날에는 사실적인 것을 답습하며 똑같이 그리면 잘 그린다고 했는데 그것은 기교가 많이 가미가 된 것으로 저는 그런 것보다는 상상력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같아요. 그래서 무언가 초현실적인 것, 기발한 것, 쇼킹한 것, 감수성을 확장시킬 수 있는 것, 하지만 너무 추상적으로 가버리면 이해를 못 하기 때문에 형태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면서 해석 할 수 있는 다면적인 것을 추구하려고 합니다.

Q.화백님 그림을 보고 있자면 순수자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합니다. 그리고 국내보다는 서양에서 더 빛날 것같은데 화백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안그래도 제가 의사친구에게 전시한다면서 몇 점을 보냈어요. 그랬더니 그 친구딸이 미국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고 큐레이터도 했는데 엄마가 보내준 그림을 보면서 “엄마친구 맞냐면서 너무 감각이 젊다. 미국오면 먹힐 것이다” 라는 얘기를 해줬다 했고, 그리고 이번에 미국에가서 전시를 해봤더니 사람들 반응이 좋았어요. 물론 그것이 판매까지 연결된다면 더 좋겠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사람들이 놀랐어요. 어떻게 대작을 가져올 생각을 했는가, 더군다나 멀리서 비행기값도 만만치 않았을텐데... 저는 그런 것은 조금만 아이디어를 쓰면 된다고 생각해서 틀을 다 없애고 작품을 빨래처럼 개서 가지고 가니까 운반비 없이 전시할 수 있었습니다.

Q.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이 있다면?

A. 예전에는 제가 그림을 데생 하고 그것을 똑같이 옮겨서 그렸는데 지금은 “내 무의식을 끌어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래서 캔버스를 오래 보고 있으면 뭔가 형체가 떠오르기도 하고, 그려놨는데 다음날 다시 앉았을 때 생각이 바뀌면 수정도 하지만 정말 조금 전까지 한시간 전까지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게 떠오르면 감사하죠. 이것은 나만의 작품이 아니고 하늘이 주신 영감을 내가 받은것이구나 그리고 내안에 내장된 무의식 속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서양화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A. 우리 동양화의 경우에는 대개 형식이 있잖아요 먹을 써야한다, 한지다, 사군자다 등등... 그런데 서양화는 그 틀을 많이 깬다는 점에서 좋은 것같아요 자료도 무한할 수 있고 형태도 거기에다 꼴라주처럼 덫대서 할 수 있고...

물론 요즘에는 동양화, 서양화의 구분도 없어졌고 그림과 조각의 구분도 없어졌고 많은 것이 통합으로 가다보니까 학문도 그렇고 그림도 그렇고, 그래도 서양화는 강렬한 색체를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같습니다.

Q. 존경하는 인물이나 롤모델인 화가분이 있다면?

A. 저는 샤갈을 좋아합니다. 일단 샤갈은 일상생활에서는 굉장히 어린이 같았지만 그 사람의 그림을 보면 꿈을 꾸게 해주거든요. 그리고 고흐를 좋아하는 것은 고흐는 미쳐가면서도 했잖아요. 물론 예술이라는 것은 맨정신으로는 잘 안되고 항상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선에서 모든 세포가 깨어있다고 보고있어요. 그 순간에서는 각성이 되어있고 내 자신 이상의 것이 되기 위해서 온 힘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미쳐가면서도 그릴 수 있는 고흐의 영혼, 그리고 한 명을 더 꼽자면 피카소는 인간성은 별로 안좋아해요. 너무 많은 여성들을 파괴시켰기 때문에 그렇지만 예술에 있어서는 그 사람만큼 다양한 시도를 한 사람은 드물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존경합니다.

Q. 혹시 이 기회에 스승님 소개 한번 해주시겠습니까?

A. 스승님은 프랑스인 죠오즈 샤레르 교수님으로 이분은 판화를 하시는 분입니다. 제가 불어가 서투니까 완전히 뜻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저에게 자유정신을 많이 이야기 해주셨죠. 스승님은 시인이면서 화가면서 연극연출가 이기도 하셨어요. 그런데 저한테도 역시 뽈리도라? 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패션도 하면서 글도 쓰면서 그림도 그리니까요. 그리고 한국에서는 문은희 선생님, 금동원 선생님이신데, 문은희 선생님의 경우에도 80대 후반이니까 연세가 많으신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40대 후반에 이혼을 하셨어요. 정말 그림에 몰두하고 싶다고 생각해서... 물론 사회적으로 보면 자녀와 남편에게는 부담이 되겠지만 예술혼 그점에서는 참 본받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 금동원 선생님은 90대 초반이시지만 전시를 끊임 없이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따듯하게 후배로서 덕담을 해주시면서 늙지마라, 그 늙지말라는 말이 육체가 아닌 영혼이 늙지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십니까?

A. 내년초에 캐나다에서 초대전을 하자고해서 1월이나 2월중에 교섭중입니다.

그리고 시사신문사에서 주관하는 내년 4월초 일본 전시. 그리고 11월에 조선일보사미술관전시가 확정이 됐습니다.

 

▶ 임경숙 화백은 프랑스 파리 프레리드라 퍽뜨 의상과 데생학교를 졸업했으며, 코스튬 떼아뜨르 연극의상학교를 수료했다. 이어 임 화백은 죠오즈 샤레르 교수에게 판화를배웠으며, 파리8 대학 그룹전에서 프랑스 젊은 디자이너 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임 화백은 그림이란 예술세계에 대해 ‘예술은 내가 감동받지 않으면 타인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고 강조하며, 예술은 진정성이있어야 어떤 순간에도 아름답다고 말했다. 또한 예술은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것의 경계선 위에 놓여져 있다고 생각한다며 “어깨가 돌아가지 않고 피를 쏟아낸다해도 나의작품 활동은 예술 세계와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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