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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藝人. 판소리 국악계의 거장” 심당 안숙선 명창!“국악계에 혼을 태운 60여년, 그 여정을 듣다”
이정엽 大記者  |  sisayonha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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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4.21  1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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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藝人. 판소리국악계의 거장" 심당 안숙선 명창@자료사진제공

◆전북 국악의 성지 남원에서 싹 틔운 국악의 열정!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예능 보유자인 심당 안숙선 명창.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안숙선 명창은 전북 국악계 성지로 불리는곳 중 하나인 남원에서 태어났다. 예인의 피가 흐르는 집안에서 태어난 안숙선은 ‘클 나무는 어린 떡잎 때부터 알아본다’는 속설처럼 어려서부터 그 끼를 발산하며 대한민국 국악계의 계보를 잇는다. 집안의 예인 혈통도 혈통이지만 그녀의 집념 또한 대단하다. 9세에 국악을 시작하여 60여년을 국악에 혼을 태운 심당. 그러나 후회한 적 없다고 말하는 안숙선 명창.  巨木이 된 오늘날의 결과는 계보로 이어지는 집안혈통과 고생을 해가며 일궈낸 집념이 이루어낸 산물이 아닐까 싶다...

■ 선생님 안녕하세요. 독자 분들께 그리고 선생님을 좋아하는 팬들에게 인사 한 말씀 주시죠.
- 우리 판소리 사설의 ‘만화방창(萬化方暢) 꽃시절’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런 시절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러한 좋은 꽃시절에 불행하게도 걱정을 하게 돼서(코로나 때문인 듯)...
항상 행복하다 하며 살았는데 또 이렇게 불행이 오고 그게 인간사인 것 같습니다. 미리미리 잘 대비하고 어르신들이나 어린아이들이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명창 안숙선 하면 국악을 좋아하는 분들은 모두 존경하시는 분인데, 선생님 최근 근황이 궁금했습니다.
- 재작년부터 큰 작품들을 많이 하고 나이가 나이인 만큼 그에 걸맞게 작품을 성공시키려고 신경쓴 게 너무 힘이 들었나봐요. 나이는 많은데 어린역할을 하다가 노인역할을 하다가 여러 표현을 해야 하는 작품을 소화하느라고 힘들었나 봅니다. 조금 힘이들었지만 지금은 열심히 운동하고 쉬면서 많이 회복했습니다.
 

   
▲ 공연중인 안숙선 명창@시사연합신문

■ 수많은 예술계통의 파트 중 왜 국악계로 입문하게 되셨나요. 특별한 동기가 있습니까?
- 제가 국악을 하게 된 것은 너무나도 간단해요. 외가쪽에 문화재도 계시고 모두 명인들이셨어요.  그래서 저는 명창이 되든 명인이 되든 돼야한다고 책임감을 느끼며 살게 돼서 이길을 택하게 된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고향 남원하면, 고창에 이어 전북 국악계 성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인제들이 등용 됐습니다. 물론 선생님도 그 일원이시고요. 남원이 지리적으로 특별한 게 있을까요?
- 남원은 지리산에서 뿜어져 나오는 정기, 지리산에서 보여주고 싶은 인간의 세계를 지리산은 원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소리도 지리산을 뛰어 넘고, 악기도 그렇고, 창극도 그렇고 작업할 때마다 지리산의 정기를 한 번 뿜어보자, 지리산의 정기를 받고 선배님들을 따라가고자 발버둥 쳤던 것 같아요.

■ 자료를 찾다보니 선생님집안 국악계보가 있더라고요. 소개하자면“대금산조 인간문화재인 강백천이 어머니의 사촌이며, 판소리 인간문화재 강도근이 그의 외삼촌, 그리고 태평무 인간문화재인 강순영이 그녀의 이모다”이렇게 기록되어 있더라고요. 그런데 또, 이모인 강순금에게 가야금산조와 병창을 배우셨다고 기록이 돼있습니다. 이모, 어떠한 분이셨습니까?
- 강순영이라는 예명은 이모님이 한창 활동하실 때 ‘강순영’이라고 불리셨고, 그 후 결혼하시고 활동을 그만두신 후로 ‘강순금’ 본명으로 불리신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연세가 많이 드셔서 활동을 좀 하셨는데 진주로 거처를 옮기셔서 진주팔검무도 하시고, 무용도 하시고, 못하시는 게 없어서 말년에는 ‘경상남도 인간문화재’로 지정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생존해 계십니다.

 

   
▲ 본지와 인터뷰중인 안숙선 명창@시사연합신문

◆ “만정 김소희, 향사 박귀희 선생의 계보 받아 대한민국 국악계 대를 잇다”

■ 역시 국악은 판소리이고, 또한 이쪽계통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이 ‘만정 김소희 선생님’과 ‘향사 박귀희 선생’이신데, 만정 선생님과 향사 선생님과는 어떻게 인연이 되셨나요?
- 박귀희 선생님은 제가 국악원에 나가서 수업할 때 어르신들로부터 말씀으로만 들어봤고요.
제가 남원에 있을 때는 뵌 적이 없어요. 언제 한 번 뵈었느냐 하면, 제 어릴때 기억으로 서울에서 이승만 박사 탄신기념 민속예술경연대회가 있을 때 어른들 따라서 참여를 했어요. 그런데 인연이 되려고 했는지 공연단들이 여관에서 묵게 됐는데, 박귀희 선생님이 운영하시는 운당여관 이었어요. 저는 나이가 어리니까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밖에서 들리는 소리가 조금 소란스럽더라고요.  박귀희 선생님께서 출타하셨다가 돌아오신 거예요. 그래서 일어나 뵈었는데 그런 멋쟁이 미인이 없을 정도로 정말 멋진 분이셨어요.
그게 '향사, 박귀희 선생님'과의 첫 만남이었고요.  만정 김소희 선생님은 남원 국악원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서울로 올라와서 네 재주가 얼마나 있는지 좀 보자 하시며, 해외공연을 가야하는데 안성맞춤인 꼬마를 찾고 있다고 하셔서 그 멀리 남원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서 뵀던 게 처음입니다.

■ 지금까지 60여년이 넘도록 국악을 해 오셨습니다. 또한 수많은 작품에서 주인공을 하셨는데 특별이 애정이 가는 몇 작품 소개 해주시죠.
- 저는 인터뷰를 할 때 어떤게 제일 좋으냐, 어떤걸 사랑하느냐 하는데 저는 하나로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노래를 할 때에 밀고 당기고 이런 의미를 알고 불러야지 쉬운 노래라고 대충 불러서는 사람의 마음을 쥐어흔들지 못 하기 때문에 그렇고, 어떤 구절이든지 춘향가라면 춘향가 심청가라면 심청가 다 좋아합니다. 그러나 꼭 이야기 한다면, 그 중에서도 춘향가를 참 가치 있게 생각합니다.
춘향가의 사설을 다 이해하지 못했는데 책을 내놓고 나서보니 이러한 뜻이 있었나(?) 예술적으로 높은 수준인지라 제가 너무 깜짝 놀라서 지금부터 사설을 다 외우고 공부를 하고 싶을 만큼 춘향가 사설은 너무 멋졌어요. 또한 장면마다 그 장면에 맞게 장단을 소리로 표현해 놓으신 분들은 도대체 누구셨을까(?) 이 시대에 살아계셨더라면 큰 절을 올리고 싶었습니다. 판소리 만큼 우리의 사설을 연극적으로 잘 표현해 놓은 드라마나 뮤지컬이 어디에 있을까 생각합니다. 춘향가는 우리나라의 창극이라고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 선생님 계보의 제자들이 많으시죠?
- 제자들이 많습니다. 다만 아쉬운점은 제가 목숨이 다할때까지 판소리 공부를 하기로 했기때문에 제 공부하랴 활동하랴, 신경을 많이 못써준것 같아요 제자들에게...
제자들이 와서 배우면 제가 너무 피곤해서 북을 치다가도 그냥 잠들어 버리고 했던 세월이 많았어요. 때문에 후진들에게는 미안하죠. 왜냐하면 다섯 바탕에 담긴 판소리의 의미를 전해주면 좋은데, 마음에 있는만큼 가르쳐주지 못한거 같아서요.  그래서 요즘은 다섯바탕 전부 익혀서 후대에게 가게 해야 할 때인데... 적벽가 같은 것은 전쟁용어가 많기 때문에 소리하다가 가사가 딱 막힐 수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알고있는 다섯바탕(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을 잘 전수 해줘야 할텐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죠.
 

   
▲ 열연중인  안숙선 명창@시사연합신문

■ 선생님. 좀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천상의 소리'라는 극찬과 함께 1998년 프랑스 최고훈장4급인 문예공로훈장 오피스에장을 수상하셨어요. 수상하신 상에 대해 기억하시는 것 있으시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 우리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외국에서는 아티스트들을 상을 줄때 해당 수상자들을 조사를 하죠. 훌륭하신 선배님들도 계신데 저에게 상을 주신다고 해서 처음에는 놀랐죠. 그래도 기쁘게 받았 던 상입니다. 오피스에장이 최고훈장중 하나인줄 몰랐어요.

■ 올해 “제90회 남원춘향제전위원장”으로 다시 추천되셨습니다. 그런데 정초부터 코로나로 인해 4월 30일부터 열릴 예정이던 춘향제 일정이 모두 취소되어  아쉬움이 많습니다. 향후 활동 계획에 대해 궁금합니다.
- 제가 ‘춘향제전위원장’이라거나 ‘소리축제조직위원장’이라거나, 이런 것들은 제가 나가고자  하는 음악의 길에서 벗어나 행정적인 업무도 해야 하기때문에 고심했어요.  하지만 우리음악을 대중에게 또 세계에 알리는 또다른 길이라 생각해서 시작했습니다.  결국 전주세계소리축제나 남원춘향제 모두 우리음악으로 축제를 여는 큰 판이니까요.  우리음악을 최대한 그대로 대중에게 소개하고자 많이 노력했습니다.  두 축제 모두 저는 우리음악의 상징적인 역할을 했고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네요.
그리고, 향후 활동계획은 코로나가 오기 전에는 상반기 남원춘향제와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 공연계획을 할려고 했죠.  특히 영국 공연같은 경우 "영국에서 우리나라 음악을 소개하고 음악관련 행사를 주관하는 분들이 작년, 재작년에 ‘흥부가 완창’ 공연을 보고 너무 놀랐다"는 거예요.  모양새를 어떻게 소리로 표현할 수가 있느냐 하면서 "호흡하나, 손짓하나, 발떼는 것 하나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면서,  연세가 많으신 평론가께서 "올해도 또 들어야겠다"고 해서 다 준비하고 있었는데, 좀 아쉽습니다.  그리고 남원춘향제는 남원 광한루 일원에서 가을(9월초)에 공연합니다.  많이기대해주세요.

   
▲ 제자들과 함께한  안숙선 명창@시사연합신문

■ 마지막으로 선생님의 철학, 그리고 국악계의 길을 가고 있는 후배들에게 메시지하나 전해주시죠.
- 뭐 제 철학이라고 해봐야 별게 있겠어요. 저는 소리를 하되 진정한 가슴을 울리는 그런 소리를 해야만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관객이 어느 순간 듣고 "아, 저게 인간사야" 할 수 있는 것이 예술 아니겠어요.  요즘은 병원에 가느라  오갈 때  차에서 연습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소리를 하든 뭘 하든, 가슴에 진심이 담겨있지 않으면 뭘 만들어서 먹어도 그것은 제 맛이 아닐 것이고 관객이 듣고 무덤덤할 것이고, 그래서 한꼭대기(한곡)를 하더라도 관객에게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소리를 해야합니다.  소리가 온 몸에 기를 뽑아서 쓰는 것이라 관리도 잘 해야하고 끝 없이 소리를 찾아서 가야하기 때문에 어쩔 때는 선생의 입장에서 후진들이 가엽기도 하죠. 

◆우리속담에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옛말이 생각난다.
예술인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발굴의 실력을 갖고 있어도 빛을 내지 못하는 인재들도 무수히 많다. 특히 서울로 모이는 사람 속에서는 그만큼 빛을 발휘한다는 것이 어렵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 한 계통에서 거목으로 자리 매김한 문화인들을 보면 그 분이 누구든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오늘 명창 안숙선 선생님을 만나보고 그분의 발자취에 도취되었다. 가녀린 몸, 자그마한 체구에 터져 나오는 소리는 귀를 의심케 한다. 동 서양을 넘나들며 60여년 자신의 혼을 태우며 수많은 공연으로 우리문화 알리기에 온힘을 써오신 심당 안숙선 명창은 우리시대에 다시 만나기 힘든 세기의 명창으로 여겨진다. 안숙선 선생의 건강을 기원하며, 선생님과 같은 또 다른 국악거목을 양성해 주시기를 기대해본다.

취재.편집-이정엽 대기자
워딩-이현종기자


심당 안숙선 명창의 수상내용
1986년 남원춘향제 전국명창대회 대통령상 수상
1987년 제6회 KBS 국악대상 대상 수상(대상부문 최초 수상)
1993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수상
1994년 국제문화친선협회 선정 '올해의 국제문화인상' 수상
1995년 제22회 한국방송대상 수상
1996년 한국문인협회 선정 '가장 문학적인 국악인상' 수상
1998년 프랑스 정부 문예공로훈장 레지옹 도뇌르 훈장 오피시에 수훈
1999년 제48회 서울특별시 문화상 수상
1999년 올해의 국제적인 음악인상[출처 필요] 수상
1999년 옥관문화훈장(4등급) 수훈
2003년 남원시민 문화장 수훈
2006년 제2회 허규예술상 수상
2008년 제9회 대한민국 국회대상 국악부문 수상
2011년 제21회 동리대상 수상
2013년 제17회 만해대상 “만해문화예술부분 대상” 수상
2013년 제20회 방일영문화재단 주최 “방일영국악상” 수상
2015년 삼성생명공익재단 “2015 삼성행복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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