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규당 김인기 화백@시사연합신문

인생을 한편의 ‘장편드라마’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어떤 배역을 맡고 싶어 할까? 

아마도 예술 쪽으로 많은 이들이 참여하고 싶어질 것 같다. 하지만, 예술의 세계는 그리 만만치 않은 곳이다. 왜? 이쪽 세상은 혼을 팔아야 하는 곳이다. 魂 팔수 있습니까??

여기 혼을 판 예술인이 있다. 순수미술의 대가 규당(閨堂) 김인기 화백 이다.

김 화백의 작품을 보면 천부적이다. 훌륭한 스승님으로 부터 사사받은 그림은 그녀가 미술계에 입문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에 손색이 없었다.

또한 김 화백은 대단한 노력파이다. 그러한 노력이 그림에서 잘 표현되어있다. 특히 그녀의 그림 중 풍경화를 보면 더 많은 느낌을 표현한다. 자연을 벗 삼아 가장 순수함 중요시하는 작품은 우리마음에 감동을 전하기에 손색이 없다.

요즘 가장 기본적인 것을 무시하는 그림이 난무한데 비해 김 화백의 그림을 보면 기본을 근본으로 한 창의적 발상을 그림에 대입해서 그려낸 풍경화는 섬세하기 그지없다. 마치 사진을 보는듯한 환상 그 자체...

이는 혼이 그림에 빠졌기 때문 아닐까?

김인기 화백을 만나 그녀에 그림세계를 좀 더 알아보기 위해 집을 찾았다. 서울 경계를 지나 새롭게 뜨고 있는 이곳 삼송리 산 언덕자리. 풍광이 제법 멋지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정감이 있는 골목 끝자락, 이를 배경으로 소설이 나올법한 언덕자리에 나무대문이 활짝 열렸다. 멋진 소나무와 조그마한 연못, 또 장미넝쿨과 수국나무가 먼저 반긴다. 이곳이 김 화백이 거쳐하며 작품과 제자양성에 힘을 쏟는 곳이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역시 예술인의 집이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집안에 들어서니 벽에 몇 점의 그림이 걸려있다. 혹시나 해서 유심이 봤는데 자신의 작품은 없고 대신 오승우 선생님의 호랑이가 아주 여유 있는 자태로 모두를 바라본다.

자신의 작품을 한 점이라도 걸어둘만 한데 이유를 물었다.

김 화백님, 왜 본인 작품이 없습니까...(?)

Q. 화백님 안녕하십니까. 독자 분들께 인사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네 안녕하세요. 규당 김인기 입니다. 시사연합신문 독자여러분 반갑습니다.

Q. 화백님, 화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자신의 생각과 삶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행복한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그림 속에는 꿈이 있죠. 그 꿈은 붓의 터치속에 현실로 나타납니다. 행복으로 또는 우아하게 이렇게 화가의 손에 의해 모든 것을 표현하고 공감하고 작가가 작고 후에도 그 삶이 고스란히 남아있죠...

Q. 왜 하필 힘든 한국화를 선택하셨을까요?

A. 네 힘들고 어렵긴 하지만 제가 선택한 이유는 한지에 스며드는 먹색이 매력이 있어서가 아닐까싶네요. 그러나 현실에서 서양화에 비해 한국화는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작가들생활은 늘 빠듯하죠. 그러나 서양화에 없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특히 한국화는 우리의 정서와 많이 부합하죠. 특히 먹색으로 나타내는 그림은 그 비중이 묵직하면서 어딘가 모르게 중후한 맛을 풍깁니다. 마치 사대부의 기개를 품고 있다고 할까요(?) 처음 다가서기가 힘들겠지만 한번 빠지게 되면 그 매력을 도저히 뿌리칠수 없습니다.

▲ 규당 김인기 화백@시사연합신문

Q. 한국화의 매력이 묵화라는 말씀이시죠?

A. 네 특히 한국화는 검은색 하나로 세상 모든 자연을 담을 수 있습니다.

먹향도 좋고요. 한국화는 오래 볼수록 정이 들어요. 편안하고 작가의 생각이 스며들어있고, 그날의 생각에 따라 그림도 움직이는 것 같은 생각이들고 그 매력에 빠졌죠.

Q. 그림을 그릴 때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이 있나요?

A. 간단해요. 첫째, 그리고 싶을 때 그립니다. 행복할 때 그림을 그렸으면 합니다. 그리고 기초와 기본은 탄탄한 작가라면 왜 어떻게 무엇을 그려야 하는지 그날그날의 주인공은 확실히 정해놓고 붓을 잡아야 아름다운 그림이 탄생하지 않을까 봅니다.

Q. 화백님을 규당 이라고 호칭하시던데요 규당 이라는 호에 대해서 설명해주시죠.

A. 제가 40년 전에 서예가 성곡 임현기 선생님이 지어주셨거든요 안방규字에 집당字,처음에는 마음에 안 들었어요. 저는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여행을 많이 다니고 있는데. 이 호칭은 집에 있는 호칭이라서... 지어주신 분한테 어쩔 수 없이 고맙게 생각하고 지금까지 쓰긴 하는데요. 지을 때 태어난 시와, 고향, 유명산, 혈액형 등등 전부 알아보고 지어주셨기에 지금까지 쓰고 있습니다.

Q. 지금까지 화백님을 화가로 대성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스승님 소개 좀 해주시죠.

A. 스승님이 세분 계세요. 서예가 성곡 임현기 선생님이 계세요. 제가 40년 전에 서예를 했거든요. 문인화 유천 오수철 선생님이 계시고 끝으로 한국화 해당 김영순 선생님이 계시는데 화가로서 손색없는 가르침과 길을 만들어 주셨죠.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시고 항상 친절하고 겸손한 인품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최고의 선생님이라 생각해요. 그 선생님이 저를 이끌어주셨고 저는 배울 때 해당선생님이 숭실대와 국민대에서 강의를 하셨는데 빠지지 않고 열심히 열정적으로 공부한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실력있는 교수님 강의를 많이 들으러 다녔고, 동국대와 상명대에서 8년간 대학을 열심히 다닌 기억이 나고요 수료도 많이 한것같아요.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Q. 거실에는 왜 선생님 본인 작품이 없을까요?

A. 저는 제 소중한 작품이 다른집 거실이나 관공서에 걸려있는걸 보면 아주 기분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다른 작가님들의 작품을 거실에 전시해 놨습니다.

Q. 선생님 작품이 어느 시집 커버픽션이 돼있던데 어떻게 된 건지, 그리고 시인으로 등단하게 된 사연 좀 소개 부탁드립니다.

A. 등단까지는 아니고요. 시작한지는 얼마 안됐어요. ‘셋이서 문학관’이라고 “중광스님, 소설가 이외수, 시인 천상병” 세분의 작품을 볼 수 있는 문학관이 있습니다. 그 문학관에서 주관하는 공부방이 있어요. 글 쓰고 시인들이 모여서 토론도 하고 배우는 아주 편한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 6기에 시집을 내면서 표지그림을 부탁받아서 표지 그림을 하게됐고, 그리고 시도 몇 점 넣어봤습니다. 정말 재밌기도 하지만 처음으로 글을 써봤습니다. 책을 보시는 독자들이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네요...

Q.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저는 앞으로 그림을 계속 하겠지만 그림 속에 글이 보이고 글속에 그림이 보이는 그런 작품을 계속 만들 생각입니다. 뒤늦게 시작했지만 좋은 글도 많이 남기고 싶고요, 또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은데 여행을 하다보면 좋은 작품과 글이 나올 것 같아 여행을 많이 다닐 계획입니다.

Q. 인터뷰 감사합니다.

인터뷰. 편집- 이정엽 선임기자

워딩 - 이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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