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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관, 불교 인권위원회 위원장 리얼 인터뷰!“내 생애 꼭 하고싶은 것... 불교 승가대학에 ‘불교사학과’ 생기는 것”
이정엽 선임기자  |  sisayonha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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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1.19  22:4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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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계의 인권지킴이”인권위원회 수장, 진관 스님@시사연합신문

우리의 역사속에 승려들의 구국활동은 유명하다. 때로는 외세와의 전쟁터에서 때로는 민주화운동에서 저항하며 민중과 함께한 승려들이 있었다. 그러한 불교 역사속에 가장 이슈 중 하나가 1980년 신군부의 ‘조계사 난입’ 사건일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진관 스님이 있었다. 이제 세월이 40여년이 흘렀다. 그 당시 한몸으로 마음을 함께한 동지들은 모두 흩어졌다. 그러나 진관 스님만은 아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왜 그는 노령의 나이에도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을까?
조계사 본원 진관스님의 거처로 방문하여 자초지종(自初至終) 을 들어보자.

■ 반갑습니다. 진관스님 최근 근황이 궁금합니다.

-10월은 불교법란 (12.7법란) 40주년인 달이기 때문에 그 역사를 어떻게 하면 바로 전달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런 역사가 물거품이 돼버렸습니다.
조계종이 피해자이면서 피해자의 역할을 하지 않고 가해자인 것처럼 하고 있는 현실이 아쉽고, 40년 전에 당했던 대다수 스님들이 제 목소를 내지않고 있다는 현실을 어떻게 하면 바로 세울 것인가, 등 이런 생각에 잠겨있습니다.

■ “진관”이라는 뜻은 불교계에 업적을 크게 남긴 스님에게 주는 별호라고 되어있더군요. 法名은 어느분이 지어주셨나요?

-제 법명은 계룡산의 유명한 유학을 했던 스님(유학승)인데, 제가 이름을 왜 진관으로 지었습니까? 물었더니,  앞으로 그 이름은' 입신 출세 할 이름'이다며, 그 노스님이 지어줬는데...
그때 12명이 법명을 받았어요. 그런데 법명을 가지고 있던 사람 중 ‘진관’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 출세했습니다.  저는 절에 들어와서 슬프거나 괴로운 적 없이 장자의 모습으로 지탱해온 것이 이름 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많은 분들이 진관스님 고향, 그리고 입적사연, 등 스님에 대한 애정이 많은 만큼 스님에 대해 궁금한게 많을 것 같습니다?

-글쎄요... 전라도라는 이름을 전부 소유하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고향은 구분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할아버지 아버지가 살았던 곳 호남 정도라고 항상 생각하고 있습니다.

■ 스님은 지금까지 많은 책을 발간하셨습니다. 혹시 스님이 쓴 책중에 “이책은 한번 꼭 읽어봐라” 하고 싶은책은?

- 시집을 25권, 일반책은 12권을 집필했는데, 그 중에 가장 애정이 가는책은 ‘고구려 불교수용사연구’ 라는 책이있는데 책이 두껍습니다. 역사를 회복할 수 있는 '고구려수용사' 연구인데 지금은 아마 절판 됐을 겁니다. 그 책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 스님과 관련한 자료를 뒤적이다보니 스님 출생지가 전남 화순으로 되어 있더군요.  그리고 불교계에서는 드물게 시대에 항거하며 정권과 투쟁이 많았습니다. 물론 인권과 관련되긴 했지만, 스님도 리지스트(resist)적인 DNA가 흐르는게 아닌지요?

- 전남 화순이라는 지역이 있는데 그 기질이 김삿갓의 정신을 잇고 있지 않나...
화순에 가면 김삿갓 집이 있어요. 어렸을 때 그곳에서 시를 쓰기도 했는데, 네 다섯 살때의 기억이 납니다. 화순이라는 지역에서 살다가 아버지따라 여러군데 살았어요. 그 중 생각나는곳이 정읍 그리고 김제 입니다.  지역이 모두 전봉준 장군이 싸웠던 역사가 있더군요. 그래서 김제에서는 전봉준 장군을 생각하며 살았어요.
화순이나 정읍이나 김제나 현장이 전부 민족운동, 저항운동했던 지역이라 자연히 ‘역사를 바로 세워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감옥엔 여섯 번이나 갔는데 저는 일부러 더 갔습니다.
전두환 군부가 5.18 광주민중들을 학살하고 불교계에 군인이 난입하고, 이런짓은 있을 수 없는일이다 해서 1981년도부터 진실규명을 위해 계속 노력을 했습니다. 그리고 1983년도에 종단에 큰 사건이 터집니다.
신흥사에서 살인사건이 터졌어요. 불교계에 일대 큰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보고 “불교가 이렇게 돼서는 안된다. 국가로부터 당했는데 내부에서까지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서 조계종 총무원장 퇴진을 요구하며 20일을 단식을 했습니다.
결국 총무원장이 물러 나겠다고해서 단식을 끝냈습니다. 이후 승가대학생들과 함께 수유리에 있는 4.19묘지 참배를 150명이 함께 합니다. 그러자 한국의 종교, 정치계가 깜짝놀라게 되었죠. 당시 불교계는 4.19묘지에 관심이 없었는데, 격려가 말할 수 없이 쏟아지는 것을 보고 이것이 우리가 할 일이로구나, 민중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승려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민중과 함께해야 불교가 산다고 생각하면서 83년, 84년에 민주화 운동 본부가 생길 때 본격적으로 참여를 많이하게 됐습니다.

■ 자료에 재미있는 대목이 하나있더군요. 지난 전두환 정권시  ‘10·27법란’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때 진관스님께서 조계종 법란대책위원장으로 신군부와 맞서면서 불교계에 급 부상하셨습니다. 이때 이야기좀 함축해서 말씀 좀 해주시죠.

- 그렇게 1985년이 되고 불교가 이렇게 돼서는 안된다 해서 민중불교운동연합이 생겨요.
민중과 함께 해야한다고 해서 불교내 강력한 조직이 생기게 됩니다.
1987년에 박종철군이 사망합니다. 이때 종철이에 대해서 해줄 수 있는 게 없었고, 불교계가 권력이 시키는대로 하는 바람에 종철이를 위한 불교 모임을 만들었고... 그 때 제가 구속이 됩니다. 종철이 진상 규명하라고 할 때 감옥에 가고, 그 때 검사가 임채진 검사입니다. 이때 임 검사를 처음봤어요. 그때 나는 당당하게 재판에 임했고 변호사는 김대중 측에서 보낸 홍영기 영감, 김영삼 측에서 김명윤 영감 그렇게 해서 최고의 변호사들이 변론을 해줬는데, 이때 이 변호사들이 명분을 만들어 줬어요. 그 명분이 뭐냐(?) 내가 시인이라는 것, 시인은 굴복하지 않고 당당히 살아야 한다라고 마음 먹었죠.
일제 때 저항했던 윤동주, 이상화, 만해 한용운 이런 시인처럼 해야겠다 해서 법정에서 살려달라고 해본적이 없었습니다. 변호사 덕에 일찍 출소를 했어요. 출소하니까 6월 항쟁이 한참이었어요.  그런데 가만이 생각해보니 동지들은 모두 감옥에 있는데 시인이라고 내가 감옥에서 적게 살아서 되겠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다시 6월 항쟁에 참여하게 되고 이로인해 다시 감옥에 들어갔는데 바로 석방이 되어버렸고, 이런 관계속에서 역사와 인권에 눈이 뜨고...
그리고 6월 항쟁 이후에 노태우 대통령이 나타나잖아요? 그때 불교 인권회가 창립이 됐고. 교수들을 올려놓고 창립을 해야하는데 그래서 동국대 정각원에서 창립을 하게됩니다.

■ 최근 “達摩禪茶”(달마선다)시집을 발간하셨습니다. 책으로 몇 번째 발간이며, 제목 또한 예사롭지 않은데, 설명좀 해주시죠?

- 스물여섯번째인걸로 생각이 됩니다.  ‘달마선다’ 라고하는 제목을 넣은 것은 오늘날의 조계종에서는 선종을 표방하고, 또 사회적으로는 갑자기 茶에 대한 운동이 일어나는데 지금 커피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요. 그런데 절에서는 마음과 수양의 토대를 삼으려면 우리차를 마시고 보급해야 하는 것을 선승들이 해야하지 않느냐 하는 관점입니다. 차의 세계라고 하는 최석환 선생을 우연히 만나 처음으로 차를 마셨어요. 차와 관련한 아주 유명한 분입니다. 이 분과 우리차를 마시는데, 최 선생님이 중국에 한번 가자고 해서 따라갔어요. 그런데 중국에 가보니 茶가 바로 정치이고 茶 힘이 세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어요.

그런데 달마동굴을 가서보니, 선승들이 달마가 원조인데 달마를 버리고 커피를 마시고 있어요. 그래서 수행자들에게 茶로 새로운 정신수양이 이뤄져야 하지않느냐 생각해서 “달마 선다”로 했는데, 오히려 “선다보다 선차로 해야 한다” 해서 이번에 소개할때는 선차(달마선차)로 소개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근래 스님께서 법화경 삼매경에 빠지셨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 그건 조금전 기자님하고 이야기를 쭉 했었는데...
김수로왕 42년에 가야를 건국하고 48년에 허황후 오빠라고 하는 스님이 옵니다. 이것은 고구려 불교보다 먼저 온 것인데, 역사를 제대로 기록해놓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장유스님이 인도에서 가져온 경전을 금강가야. 돌멩이 한 줄만이라도 쓰여 있었다면 정말 큰 문화유산인데, 이렇게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그냥 겉모습만 보고 있어서 아쉽습니다. 그리고 법화경 사경을 하면서 역사를 더듬어 보니 지금 6만9천9백44자의 글자로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법화경 사경을 한 스님들은 많아요. 그런데 이것을 1차 2차 3차 이렇게 한 적은 없어요 그래서 제가 지금 7차에 들어가는데, 이 것은 어마어마한 역사입니다. “불교가 들어왔던 역사를 2천년 만에 새로운 사경운동을 전개한거다”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진관스님이 민주화운동, 인권운동, 경전의 사경운동, 차 마시기 운동 이런 운동을 시도를 하는것은 내가 열매를 먹는 것이 아니라 내가 꽃을 피워놓으면 다른 사람들이 열매를 먹게 되는 겁니다.

■ 스님, 수많은 역경을 딛고 오늘에 이르셨는데 ‘이것 내 생애에 꼭 하고싶다’ 하신게 있으신지요.

- 문학운동, 시운동, 경전운동, 이런 것을 먼훗날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습니다, 올바른 역사관을 전해주고 싶고... 그리고 불교에서 중요한 것은 불교 승가대학에 ‘불교사학과’가 생기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꿈꾸고 있습니다.

■ 인터뷰에 응해주셔 감사합니다. end

 (참고: 상기 기사는 리얼을 살리기 위해 인터뷰 내용에서 교정을 최대한 자제한 글입니다)

 워딩. 이현종 기자/ 취재. 이정엽 선임기자

 

 

이정엽 선임기자  sisayonha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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