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엽 팩트펀치 직격인터뷰>>  계은숙, 은빛날개를 편다!

일본무대를 평정했던 엥카의 여왕 계은숙@계은숙 제공=시사연합신문 이정엽
일본무대를 평정했던 엥카의 여왕 계은숙@계은숙 제공=시사연합신문 이정엽

70년대 生 이상 이라면 누구나 기억 할만 한 가수 계은숙!
"모 언론사 기사에 의하면, 계은숙은 1977년에 광고 모델로 처음 연예계에 발을 내디뎠다. 뛰어난 음악적 자질을 확인한 뒤 78년에 유니버설레코드에서 가수로 데뷔했고, 1980년 '노래하며 춤추며', '기다리는 여심'을 발표하면서 그해 MBC '10대가수가요제' 신인상을 수상했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이런 그녀가 어느날 홀연히 국내 활동을 뒤로하고 일본무대로 활동장소를 옮겼다.
무슨일일까? 그리고 일본에서 20여년을 활동한 그녀가 또 어느해 갑자기 우여곡절 끝에 다시 우리무대로 돌아왔다.

그녀는 국내 복귀 후 불미스런 일들이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면서, 활동이 중단되는 위기를 맞고 그렇게 그녀는 억울함을 가슴을 묻은체 수년이 흘렀다. 그러나 그녀는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서서 그 억울했던 일들을 이제 세상에 밝히기로 했다.

대체 무슨일인가? 도대체 억울한 일들이 무엇인가? 그녀를 만나 속시원한 이야기나 들어보자!

■ 안녕하세요. 시사연합신문을 좋아하시는 독자분들께, 그리고 가수 계은숙씨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인사한 말씀 주시죠...

▶ 네, 시사연합신문 구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가수 계은숙입니다. 시사연합신문 인터뷰를 통해 여러분들과 많은 소통의 시간이 될 수 있으면 감사하겠습니다.

■ 최근 계은숙씨 근황에 대해 궁금합니다.

▶ 일반 아줌마들 처럼 잘지네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명예와 신용을 회복하는 일로 재 충전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알다보면 좋은일도 또 나쁜 일도 많습니다. 인간관계 잘못된 걸 누구 탓하겠습니까. 이제 신용복귀, 명예복귀, 가수로 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고요, 한국에 와서는 제가 어머니 치매 때문에 거의 한 10년 굉장히 힘들게 지냈구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건재하게 노래할 수 있는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습니다.

■ 데뷔하게 된 동기를 이야기 해주신다면?

▶네. 학교 다닐 때 선생님께서 발표회 날 개인 오락 시간에 노래를하게 됐는데, 선생님께서 계은숙이는 가수를 하면 어떨까? 하시는 그 말소리, 한 번의 그 기억이 첫 번째 마음을 다지게 되었고, 가장 직접적인 모티브는 중학교 졸업반 때 판코리아 사장님 딸이 성수 여중 후배인데 후배 아버님의 소개로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계은숙씨의 최근모습. 평범한 모습이 인상적이다@시사연합신문
계은숙씨의 최근모습. 평범한 모습이 인상적이다@시사연합신문

■ 국내무대에서는 얼마나 활동했습니까?

▶ 국내 활동은 별로 길지가 않습니다. 78년도 데뷔해서 3년 4년 일하다가 일본으로 건너가게 됐죠. 길지가 않습니다.

■ 국내에서 가장 핫한 시절이 몇 년도 였나요?

▶네, 핫한 시기는 78년에서 79년쯤으로 기억되는데요. “노래하며 춤추며” 때부터 핫 했습니다.

■ 그시절 생각나는 ‘추억의 에피소드’ 하나 소개해주시죠?

▶네, 추억은 뭐 군인 아저씨들 위문공연이죠. 굉장히 그 뭐랄까요? 가슴이 찡하는 그런 무대와 그 격렬한 그 분위기...

■ 그 당시 기억나는 부대 있으니까?

▶네, 노태우 사단장님 때 그때 초대해주셔서, 위문 공연이 끝나고 식사 대접받고, 참 굉장히 자상하시구나! 그런 이미지가 생각납니다.

■ 어느 날 갑자기 일본행 기사가 떳습니다. 그 배경좀 말씀해주시죠.

▶일본은 요코하마의 김시종 회장님이라고요 우리 민단의 1호인데, 김시종 회장님께서 하마 게스케 선생님하고 스캔들 때문에 가장 많이 시달리셨는데, 어려울 때 저한텐 아주 구원의 손이었죠.

■ 일본에서 많은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매스컴에서 접했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네. 고생은 누구나 모두하는 일인데요, 이제 습관적인 것, 다음에 일상생활에 길이 안들여진 것들이 어렵지, 다른 것들은 어려운 게 없었습니다. 친절하고 또 정확하고 고생한 만큼의 댓가와 환경의 댓가가 충분한 곳이죠.

■ 일본에서 히트 곡들이 많던데요. 일본에서는 몇 년 활동하셨습니까?

▶네. 약 23년쯤 된 것 같습니다.

■힛트곡은 몇 곡 정도 됩니까?

▶네. 히트곡은 열 곡이 넘는데요 일본은 라이브콘서트 히트곡이 있고, 방송 히트곡이 있어요. 그래서 라이브 히트곡은 앨범, 방송은 싱글, 이렇게 구분합니다.

■ 힛트곡 중 애착이 가는 노래가 있다면 노래의 뜻과 함께 소개좀 해주시죠.

▶네, 아무래도 오사카 보쇼쿠, 'すずめの涙'(스즈메노나미다), '酔いどれて'(요이도레테),

'夢おんな'(유메온나), '真夜中のシャワー'(마요나카노샤와), 이런 곡 중에 더 좀 애착이 간다는 곡 딱하나 뽑으면 'すずめの涙'(스즈메노나미다)입니다.

■ “스즈메노나미다(참새의 눈물)의미는 무엇입니까?

▶참새는 한 번 올 때 피가 섞여서 나온 데요 눈물이...

그래서 어떻게 보면 샐러리맨들이 적은 월급 속에서 살아가는 그런 유머러스한 뜻이 있어요. 쥐꼬리만 한 월급에 우리가 이겨낸다는 뜻이랄까, 그런 뜻 있습니다.

■ 가족 소개좀 해주시죠.

▶가족은 경향신문사에서 일하시던 아버지가 계춘환 씨가 계셨고요. 그리고 계은숙, 그리고 뉴욕에 계관용, 계광복, 또 식구들이 많습니다. 사당동에 이모가 계시고요.

◆ “마약과의 전쟁... 무서운 손들, 이들을 상대하기에는 힘이 너무없어”

■ 아픈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기사를 좀 봤습니다. 얼울한 사연도 좀 감지가 되던데요 이번 기회에 좀 풀고 가시죠...

▶네. 제가 하도 많이 들어서 계은숙이 두세 명이 사는 것 같은 느낌 들었어요. 구체적으로 짚어주세요.

■ 한국에 와서 두서너 일들을 당하셨더라고요, 그런 일에 대한 전체적인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서 “내가 어떤 일에 어떻게 어떤 누명을 썼다”라는….

▶첫째는 한국에 사놓은 집과 관련해서, 그 집을 제가 대출받기 위해서 某 지인을 만나서 대출을 의뢰했는데 집 매매해서 그 돈으로 마약 장사를 해서 제가 누명을 쓰고 사기당했고요, 두 번째는 자동차 사는데 보증 서달라고 하여 섰는데 이것도 제가 사기당했습니다.

더욱 어처구니없던 일은 집을 팔았어요, 그런데 집 판 돈으로 마약 사업을 한 것이예요. 지인을 통해서 이걸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 때문에 정신적인 쇼크가 아주 컸습니다.

그리고 마약 관련자 김 모씨, 이런 일 때문에 지금 고민이 많습니다. 특히 집을 처분해서 우리은행 계좌를 개설해서 약을 판 돈이 꽤 컸더라고요. 그러니까 자꾸 내 주변을 미행하고, 내 주변 사람들을 자꾸 피해를 주는 게 너무 크니까 이젠 용서가 안 되는 상황이 된 거죠….

     열창중인 엥카의 여왕 계은숙@계은숙 영상 캡쳐
열창중인 엥카의 여왕 계은숙@계은숙 영상 캡쳐

■ 독자들이 보고 오해가 없도록 “내가 이렇게 해서 왜 이런 일을 당했는데 사실은 이렇다”라는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말씀을 해주시죠?

▶네. 우리은행에 추적이다 돼 있어요. 마약이 무서운 장사 아닙니까? 그러다 보니 그때 일본에 있는 나한테 일하기로 왔던 사람이 현빈 소속 기획사 홍 某氏인데요 “누님 우리 한국에서 같이 일하면 어떨까요”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그 당시 제가 왼쪽 눈 신경이 닫혀 있고, 말도 실어증으로 잘 표현이 안 되기 때문에 홍모 후배한테 그랬죠 “김종필 선생님 만나서 의논을 드릴 게 있다” 그다음에 내가 한국에 가서 일하겠다고 하는 도중에 이런 사건이 터진 거예요. 그러니까 설마 JP 조카가 그런 마약에 손을 대리라고 상상을 못 했던 거죠. 그런 내용을 지금 다 조사 중입니다. 제 지인중에 이 某 회장이 있어요. 그래서 둘이서 지금 조용히 일을 잘 해결하려고 애쓰는 중입니다.

■ 결과적으로 지인한테 대출 의뢰했는데 그 지인이 그 집을 팔아 버렸던 겁니까?

▶네. 다운계약서를 쓴다고 그러면서 돈은 나중에 주겠다고 그래서 “JP 조카가 그런 사기를 치겠나” 생각했고 서로 얼굴도 알고 또 신상이 알려진 사람들끼리 저한테 그렇게 사기를 치리라 상상을 못 했죠.

■ 그러면 사실은 계은숙 씨와 전혀 관련이 없는데, 마약 사업의 기본이 된 돈의 출처가 계은숙이라는 이름의 집을 처분을 해서 그 자금이 유용됐기 때문에 어쨌든 수사 기관이나 관계자들은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한 거군요

▶네. 그래서 제가 오사카에 처음에 일할 때 도움을 받았던 재일교포 고베 최종덕 회장님께서 지금 그걸 다 조사해주고 계세요. 일본에서도 사고가 났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말썽꾸러기로 알려서 서로 만날 기회가 없었어요. 그런데 이 모든 정황을 다 조사하다 보면 내가 억울하게 당한 일을 한눈에 알 수 있죠. 남자들은 그런 생활을 접할 수 있지만 내가 그런일 옆에 쫓아다닐 수가 없어요. 그걸 마약 장사를 한다거나 주변에 사람을 죽인다거나 말썽을 부리면 우린 도망에 다녀야지 쫓아다닐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 뒤를 다 조사하고 또 우리 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매일 사진 찍고, 지금 일본 도요타 자동차 대표한테도 의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과 한국에 연결된 나쁜 손들이 있어요. 그래서 그 사람들을 찾아내야지, 우리는 정치개념의 시끄러운 일들은 끼고 싶은 마음은 없거든요.

그리고 한빛 리조트 김 모 회장 계좌를 알 수만 있다면 내 누명도 벗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계좌를 열 방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김 某氏가 직접 연관성이 있어보이가든요. 그래서 지금 친한 지인하고 저 둘이서만 조용조용히 움직이는데…. 그런데 일본에서 이런 사고가 나고 그렇게 명예스러운 문제, 이미지, 신용, 이런 문제에서 내가 어떻게 보면 걱정거리, 상처를 주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그쪽에 대해서 제가 한국에 나와서 열심히 하려고 그러면 또 뒤집어쓰고, 열심히 하려면 또 뒤집어쓰고 그랬습니다.

마약 관련해서 더 이야기하자면, 백석 엔터테인먼트 양 某라는 분과 나를 위해서 운전하는 운전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여기서 또 약을 호텔에 전달했어요.

그리고 김기백인데 이분이 호텔 블랙박스를 제공해주셔서 제가 억울함을 많이해소했습니다. 호텔에 들어가서 작은 알약 하나 줬는데 그다음 날 아침이 온 거예요. 그래서 수원 지검에 갔어요. 담당 형사가 홍 계장입니다. 이렇게 시작이 되거든요. 내 차 운전하는 운전사 某 씨가 이 사실을 다 압니다. 왜냐면 술집으로 웨이터 생활도 하고 고생한 사람이라, 그래서 이런 일들이 엔터테인먼트 양**이 리조트 김**과 연결이 돼 있어요. 이 사람들이 주먹 쓰는 사람들이라 제가 구치소에 갔는데 모함해서 8개월 살 것을 16개월 살게 하고 그랬어요. 이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참 어이없습니다.

■ 현재 건강은 좀 어떠십니까?

▶건강 많이 좋아졌어요. 처음 일본에서는 충격을 많이 받아서 실어증에 걸렸고 병원에 치료가 힘들었어요. 내용을 알리기가 힘들었는데, 김동원 목사님이 병원, 활동 다 같이 움직여 주시고, 또 신주쿠 청년들, 일하는 사람들 다 같이 돕고 많이 협조했죠. 그리고 사건이 터지고 저희 어머니는 독립군 사는 지역이 있는데 저를 데리고 다니면서, 사람들한테 알렸죠. 딸이 잘못된 삶을 살지 않았는데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지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신주쿠 거리를 날 데리고 어머님이 도보를 하신 거예요. 저는 참 가슴이 아프고 그 약에 대한 건 잘 모릅니다. 처음이고, 일본에서는 좀 그런 이상한 일들을 겪었을 때는 시끄러운 거보다는 시간으로 해결하려고 들거든요. 그러니까 이제는 뭐 한국에 있었을 땐 내가 스스로 그렇게 일하거나 그런데 빠지거나 하는 것들을 관리를 잘해야겠죠.

◆ 이제 다시 훨훨 상공을 향해 날자

■그런데 이제 국내 활동을 조금씩 하고 계시는데, 활동을 위해서 신곡 준비하시는 것은 있습니까?

▶신곡은 지금 준비 중이고요. 인제 일본에서 오는 내용 얘기들 지금 조정 중이고요, 그다음에 지금 이제 조금 미니 디너쇼 한두 개 지금 준비돼 있고요. 일본 쪽 일들은 내가 김창수 회장님과 같이 지금 준비 중인데, JK, 윤현빈, 등 많은 분이 함께하려고 합니다.

가수 계은숙@계은숙 프러미스제공=시사연합신문
가수 계은숙@계은숙 프러미스제공=시사연합신문

■새로 준비하는 것은 주로 어떤 풍입니까?

▶네, 항상 똑같습니다. 이제는 나이를 먹었으니까 이제 완숙하고 또 옛날을 돌아볼 수 있는 일본 한국도 돌아볼 수 있는 그렇게 친선문화적인 노래를 할 수 있다면 참 좋습니다.

■향후 활동 계획은?

▶네. 제가 집의 짐 그 무거운 것도 막 들고 해서 쇄골뼈가 조금 삐뚤어졌어요. 그래서 노래할 때 지장을 받아 치료 먼저 하려고요. 그리고 제가 운동을 좀 해야 해요. 재활이 늦었어요. 3개월 안에 수술해야 하는데 시기를 놓쳤습니다.

어머님이 너무 저를 애들 취급하니까 꼼짝 못 하게 하고, 옷도 다 감춰놓으시고, 15년 동안에 제가 약치료가 다 됐어요. 다시 여러분 앞에 떳떳한 가수 계은숙으로 좋은 무대에서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인터뷰 감사합니다.

◆ 人生 一幕二場...

연극에서 한 장르의 막이 내려오고 다시 막이 오를 때 우리는 一幕 二場이라고 칭한다.

누구나 일생을 살면서 오르내림이 있다. 오르는 사람은 또 내려올 수밖에 없고 내려온 사람은 다시 희망을 갖고 오르려 한다. 그리고 그 삶속에 희망의 두 번째 인생 나래가 펼쳐진다.

지금 그 一幕二場의 주인공을 우리는 만나 보았다. 한국 여자가수 중 80~90년대 일본최고의 가수인 그녀. 언제 보아도 앳된 그 모습이다.

세상의 풍파를 겪고 왔다는 그녀. 그러나 옛 모습 그대로 우리 곁으로 살포시 다가왔다. 그리고 ‘엔카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이 부끄럽지 않게 다시 시작한 무대. 농익은 그녀의 공연 모습을 다시 한번 기대해 본다.

취재 = 李炡燁 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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