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전 UN사무차장(현:에덴복지재단 이사장)은 우리나라 정부의 국제경제담당 대사로 활동하며 1981년 9월에 남태평양의 신생독립국인 바누아투 및 솔로몬 군도에서 유엔 개발협력국 수석경제계획관 및 수석경제고문으로서 유엔에 처음 합류했다. 김 이사장은 유엔에서 8년간 근무했으며 1989년에 한국의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책임연구원이 되어 국제 경제협력에 관한 여러 이슈들에 대한 연구와 저술에 종사했다. 이후 한·일종합금융연구소의 소장으로 근무했으며, 스리랑카 콜롬보에 있는 콜롬보플랜의 사무총장직(1995-1999)에 취임해 아시아 태평양 24개 회원국의 정부간 기구인 콜롬보플랜을 활성화시키고 인적자원 개발을 강조하고 남남협력에 이바지 했다. 국제기구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최근에는 장애인 인권 문제에도 앞장서고 있는 김학수 에덴복지재단 이사장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 ⓒ 시사연합신문

Q. 한국은행, 대우 등 굵직굵직한 기업에서 안정된 일을 할 수 있었음에도 1980년경 남태평양상의 섬인 바누아투행을 결심한 배경에 대해?

A. 가장 큰 계기는 제가 경제학 박사임에도 불구하고, 공부한 지식을 쓸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컸던 것 같습니다. 뉴욕에서 대우 미주 사장을 역임할 때였는데, 유엔개발계획(UNDP)에서 남태평양 신생국가의 경제 건설을 도와줄 경제 전문가를 찾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고, 경제 개발도상국의 그림을 한번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지원하게 되었죠. 당시 바누아투는 영국·프랑스의 통치를 70년간이나 받아 국민들이 백인에 대한 열등감으로 고조된 상태였으며, 수상은 제게 “한국의 경제개발 모델을 적용해서 백인이 아닌 사람도 백인보다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에 정치적 포부를 밝혔더니 절을 세 번 하며, ‘당신이야말로 틀림없이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라며 당장 2주일 후에 자기와 같이 바누아투로 가자고 요청했습니다. 이에 가족과 상의 후 동의를 구하고 곧바로 프랑스 파리에 출장 중이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바누아투에서 4개월 동안 밤낮으로 작업해서 제1차 5개년 계획(1982~86년)을 만들었는데, 관광산업이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외국항공사와 유람선 노선 유치, 외국은행 유치, 관광시설 기반 확충 등 여러 가지 사업을 의욕적으로 펼쳐 많은 성과를 보았고 수상을 수행해 외국 국가원수들과의 외교 교섭에도 많은 지원을 했습니다. 이러한 활동이 남태평양의 여러 나라에 알려져 국제적으로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Q.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의 활동에 대해 설명해 주신다면?

A. 2001년 7월 1일부로 유엔 사무총장 코피 아난의 임명에 의하여 ESCAP 사무총장직에 취임 했습니다. ESCAP은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로, 유엔경제사회이사회의 상설기구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역내의 경제협력, 개발계획, 식량 및 자원에 관한 사업 등 아·태지역 경제사회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이 지역 전체 국가가 참여하는 정부간 대화의 광장으로 활용돼 흔히 '아·태의회'로도 불립니다. 1947년 중국 상해에서 설립돼 6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그동안 아시아개발은행(ADB), 아·태개발연구소(APDC) 등 19개 개발관련기구를 설립했습니다. 우리나라는 1949년에 가입했으며, 연 1회 총회가 열립니다. 1991년 47차 총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으며, 태국에 본부를 두고 있습니다.

Q. UN이 국제적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내 UN국제기구의 역할에 대해 궁금합니다.

A. UN 산하기구인 아·태정보통신기술훈련센터(APCICT)가 2006년 인천경제자유구역 송도국제도시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UN 산하기구가 인천은 물론 국내에 자리한 것은 APCICT가 처음이며, 제가 직접 창설하게 되어 한국은 물론 인천의 위상이 국제 사회에서 한층 높아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APCICT는 인천시 연수구 동춘동 인천경제자유구역청 내에 입소했으며, UN 산하 6개 주요 기구 중 하나인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ESCAP) 산하기관입니다. ESCAP는 아·태지역 62개 회원국을 두고 있으며 회원국의 정책결정자, 전문관리자, 강사들을 대상으로 정보기술(IT) 전문교육훈련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APCICT에서 훈련시키는 사람들이 앞으로 한국에 유리한 IT정책을 수립하고 한국 기업이 해외에 진출하는 데도 큰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APCICT에서 7년간 열심히 일을 하며, 회원국에서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들어 뿌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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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남북 관계가 평화모드로 흘러가고 있는데, 한국-북한-미국 간 협상 테이블에서 우리가 어떤 위치를 차지해야 된다고 보시는지?

A. 지금 남북 관계가 평화 모드로 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나라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국제적인 정세로 볼 때 북한은 강력한 UN제재로 인해 회담의 장으로 나온 것으로 보여 집니다. 하지만 미국이 초강경모드로 나오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예전처럼 뒤에서 합의를 뒤엎는 식의 모션은 취하지 못하죠. 남북문제에서 남한이 중재의 입장에 있다기보다 북한의 상황이 급박해진 가운데,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평화 모드를 조성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이전의 북한은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꿈과 동시에 미군 철수를 요구했는데, 지금은 미군의 주둔에 대해 용인을 한 것 같습니다. 미국 또한 중국과 예민한 관계에서 한반도가 중국과 가장 가까운 접경지대인 것을 감안, 미군 부대의 철수는 절대 안 할 것으로 봐요. 북한은 또 핵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겠죠. 미국의 군사적인 공격을 받을 가능성을 갖고 있으면서 핵을 보유하느냐, 핵을 폐기하면서 북한의 체제보장을 강조하는 두 카드를 두고 고민을 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볼 때, 한반도는 전운이 가시면서 평화모드는 조성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5월 북한과 미국과의 협상에서는 평화로 가는 디테일한 방향을 정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Q. 남북한의 바람직한 통일비용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시나요?

A. 통일비용의 큰 시나리오는 당장 통일이 됐을 때와 점차적인 개방을 통해 통일을 하는 방향으로 크게 나뉠 수 있습니다. 독일식으로 통일을 할 경우는 국경을 무너뜨리며 무리하게 추진한 면으로 인해 통일비용이 굉장히 많이 들 수밖에 없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북한의 체제를 보장하고 평화 협상을 하며 개방을 한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됩니다. 그 중 통일비용에 대해서는 다양한 수치가 나오고 있지만 남북 통일비용의 가장 큰 몫을 담당할 수 있는 것은 일본의 역할이 아닐까 하는 조심스러운 추측을 해요. 납북자 문제와 관련, 고이즈미 총리가 납북자 문제로 북한을 방문 했을 당시 김정일 위원장과 면담을 했는데, 북한과 일본 간 이견 차이가 있어요. 북한은 일본에 대해 청구권자금으로 2005년~6년 당시 120억 불을 요구하고 일본은 90~100억 불의 주장을 하는데, 그 자금을 통해 북한의 인프라 구축에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북한의 인프라는 철도인데, 전철이 80%에 달합니다. 남한의 철도는 54.4%인데 반해 북한의 철도 비율은 높은 편에 속합니다. 철도의 주 에너지는 전기인데 북한의 전기 생산량이 열악하기 때문에 남한이 세계 경제와 유대 관계를 갖고 북한의 철도 인프라 구축에 협력해야겠죠.

Q. 남한의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 하며 통일을 할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요?

A. 북한의 체제를 보장하면서, UN제재가 해제되면 UN기구의 중요성 또한 높아지게 됩니다. 6·25전쟁 후 유니세프, 유네스코 등 UN의 기구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경제·의료·식량 문제 해결 등에서 많은 활동을 했던 것처럼 UN이 북한의 상황에 맞게 그에 맞는 역할을 할 것이라 전망합니다. 북한이 정상국가가 된다면 북한도 UN의 회원국이기 때문에 여러 UN 기구들이 가서 도와줄 의무가 생기기 때문이죠. 특히 광물자원과 철도 등 북한의 자원을 활용해 중국과 베트남식의 개방적 사회주의로 간다면 통일비용이 그렇게 많이 들어 갈 것 같지는 않다는 분석입니다. 물론 단기간 내에 통일이 되는 것보다 시간을 두고 이루어진다면 통일비용의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겠죠. 남북협력기금은 남북한 주민 왕래와 교역, 경제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조성된 정책 자금인데, 현재 몇 조에 달할 정도로 많이 쌓여 있어요. 이 자금을 직접 활용하기보다는 UN에 신탁해 북한의 경제 개발을 위해 써달라는 형식으로 전달하여 북한에 간접적인 지원을 하는 방안도 있고요. 이런 특수목적의 UNDP를 활용해 북한에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이 많이 있습니다.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 직접적인 지원도 가능하겠지만 지금의 입장에서는 북한의 자존심은 살려주면서, 다자기구를 활용하는 방안도 상당히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남북한 통일 후 야기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해 전망하신다면?

A. 세계 전체를 놓고 볼 때 빈곤, 질병, 환경파괴 이 세 가지가 전 세계적인 사회 경제적 문제로 대두되게 됩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북한에 해당되죠. 또 통일이 됐을 경우 국가 간 내부 분열에 대한 문제도 생각해 봐야 되며, 테러에 대한 위험 가능성도 염려해야 합니다. 아울러 전 세계가 테러를 경계하는 상황에서 북한의 감독체계가 상당히 허술하기 때문에 북한의 핵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고 분석됩니다. 이에 미국은 북한이 핵을 폐기할 때까지 제재 조치를 절대 풀지 않을 것이며, 현재 북한은 핵을 보유하면서 살아갈 길이 없을 것으로 전망되는데 북한은 핵을 폐기하고 정상국가가 되느냐의 딜레마에 빠져있다고 봐야죠.

Q. 지난해 에덴복지재단 이사장에 취임하셨는데, 우리나라의 장애인복지정책에 대한 개선 방향과 향후 계획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현재 에덴복지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정덕환 씨는 저의 처남이기도 하지만,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막역한 사이입니다. 그는 1972년 8월 의도치 않은 사고로 인해 중증장애를 앓게 되었는데, 워낙 가까이서 지켜본 터라 자연스레 장애인의 인권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의 시대적 상황으로 보면 장애인을 부끄럽고, 창피하다고 여기는 인식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장애인들도 똑같이 교육을 받고 일을 해야 하며, 장애인들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권리를 인정해 주고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뒷받침 할 수 있는 환경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에 장애인 인권 문제 관심을 가지고 장애인기금을 통해 장애인태평양 회의 등을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중증장애인과 소외계층에 대한 인식과 제도가 잘 정비된 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입니다. 에덴복지재단은 1998년에 설립됐으며, 저는 UN에서 은퇴한 후 지난해부터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습니다. 에덴복지재단에는 140여명의 중증 장애인 중 발달장애인이 80여 명이 있습니다. 경제적 활동이 어려운 중증 장애인들의 경우 제대로 된 근로 환경이 제공되지 않아 경제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놓이기도 하기 때문에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에덴복지재단의 중증장애인들은 일을 하며 노동의 대가를 지급 받음에 따라 본인은 물론 가족들까지 높은 만족감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운영되고 있는 재단의 특성상 대기업과의 상품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정부가 중증장애인들에 대한 ‘적합품목지정’ 판로를 개척해 각 시도별로도 적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으며, 이것이 앞으로 해 나가야 할 숙제이기도 합니다.

END. 지금까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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