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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태 전 중소기업은행 부행장(현:민들레포럼 대표)은 1953년 전북완주에서 7남매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400원의 장학금을 받으며 상고를 졸업한 후 기업은행 은행입행시험을 치러 지원자 300명중 13명 합격자에 당당히 합격했다.

입사 후 29세에 기업은행 노조위원장(전국금융노동조합연맹 부위원장 겸임)에 선출됐으며, 9년간 서울과 경기도 내 부임하는 지점마다 “기업은행을 대상으로 한 영업실적 평가 1위”를 놓치지 않았다. 유 대표는 이후 본부장을 거쳐 2007년 1월엔 기업은행 부행장 자리에 올랐다. 이때만 해도 고졸 학력에 노조위원장 출신이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의 부행장으로 승진한 일은 전례가 없던 일이였다.

이후 은행권 최고의 영업귀재였던 그는 2009년 1월 첫 직장이며 젊은 시절 자신의 삶을 지탱해준 정든 기업은행을 퇴직했다. 유 대표는 이후 비영리단체인 ‘민들레포럼’을 설립했으며, 지역사회공헌, 봉사, 독립운동가와 관련된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유 대표는 지난해 “완주군민과 함께 완주의 새로운 변화와 희망을 만드는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각오로 6·13 지방선거 전북 완주군수에 도전장을 내민바 있다. 민들레포럼을 이끌고 있는 유 대표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Q. 전 중소기업은행 부행장을 37년간 역임하셨는데, 평소 갖고 계신 생활 신념이 있으신가요?

A. 37년 동안 은행에서 일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서민들의 애환이나 아픔을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요. 또 3000개 이상의 기업체를 방문하고 상대하면서 기업의 고충을 제일 잘 알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하고 있고요. 아울러 기업은행 노조위원장(전국금융노동조합연맹 부위원장 겸임)을 역임하며 가진 노하우로 인해 노조의 입장을 가장 잘 대변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노사가 화합하고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현장을 많이 다녀본 경험자로써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만들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정치에 뜻을 품게 되었습니다.

Q. 중소기업은행 부행장을 역임하신 경제통으로써 지난해 11월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상한데 이어 최근 기준금리를 1.75%로 유지하기로 했는데, 이에 대한 견해에 대해 궁금합니다.

A. 우리나라의 경제가 작년의 경우 6000억불의 수출로 인해 최고의 기록을 세웠다고 하지만 서민경제는 굉장히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일부에서는 정말 IMF 못지않게 경제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나라가 혼자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국제 사회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최근 중국과 미국 간의 무역 갈등뿐만 아니라 향후 국제 상황에 대해서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을 하고요. 이와 같은 무역 갈등의 피해자가 대한민국이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기도 합니다. 미국이나 일본, 중국을 보면 수출의 비중이 약 30% 가량 되는데, 우리나라는 수출의 비중이 88.1%(2년 전 통계 기준)에 이르거든요. 우리나라와 같이 수출에 의존하는 입장에서는 중국과 미국 등 국제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을 보면 현재 하향으로 가고 있는데, 특히 취업자수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연평균 30만명 이상이 취업이 됐는데, 지금은 연간 14만 정도에 이르지 않을 정도로 취업률이 곤두박질치면서 우리 경제 환경이 매우 안 좋은 상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 금리도 올릴 수 없고 1.75%대로 유지할 수 밖 에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이와 같이 저금리현상이 계속 유지된다면 그로 인해 발생되는 장단점이 있는데, 저금리를 통해서 우리 금융이 생산, 제조업, 취업 등의 물꼬를 만드는 것은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Q. 민들레포럼 이라는 비영리 단체를 설립하셨는데, 민들레포럼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에 대해 궁금합니다.

A. 은행을 퇴직한 뒤 고향인 완주로 내려와 그 해 9월 비영리 봉사단체를 창립하고 ‘민들레포럼’이란 단체를 설립했습니다. ‘민들레포럼’은 민들레처럼 살아온 제 인생처럼 지역사회에 봉사와 희망의 홀씨를 뿌리기 위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등록금 내기도 버거웠던 학창시절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 지원을 통해 400원의 장학금을 받으며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이것이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지원을 통해 학교를 다녔던 기억으로 인해 은행에 근무하면서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꾸준히 장학금을 주게 됐고요. 막상 은행을 그만두고 난 후에는 장학사업에 대한 뜻을 좀 더 펼치고자 민들레포럼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민들레포럼은 3가지 목적을 갖고 시작하게 됐는데, 장학사업, 정책개발, 봉사활동에 의의를 두고 있어요. 현재 장학사업을 하면서 3000여명의 회원들과 함께 어려운 환경에 처한 중·고·대학생에 한해 작년의 경우 66명의 장학금을 지원, 현재까지 총 375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했습니다. 앞으로도 장학사업을 통해 연간 100여명 정도를 목표로 장학금을 지원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Q. 현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우리나라 경제 정책 방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현재 경제 정책이 소득주도 경제 성장으로 흘러 가다가 공정경제, 혁신 성장 등 이런 방향과 함께 포용정책으로 가고 있습니다. 경제라는 것이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닌 만큼 기업하는 사람들은 기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합니다. 무엇보다 생산성을 더 높일 수 있고, 노사 간의 갈등을 봉합하고, 취업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정 경제나 혁신 성장 등 방향은 다를지 몰라도 세부적인 면에서 기업이나 단체의 이해관계가 다양하기 때문에 어떻게 조화를 이루냐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현재 기업이 일을 하는 현장에 가보면 굉장히 전전긍긍하고 있거든요. 건강한 중소기업들이 많이 배출돼야 하는데, 특히 전북 군산의 경우 현대중공업, GM 등 여러 기업들이 문을 닫게 되었기 때문에 지역 공장 가동률이 굉장히 많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상황이 비단 군산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찾아 볼 수 있듯이 이와 같이 어려움에 처한 기업 환경을 한 번 더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업이 어려울 때는 기업이 왜 어려운지, 해결점이 뭔지, 함께 연구하고, 함께 공부하고 방법을 함께 모색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기업이 없으면 경제도 없듯이, 공생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인력과 인프라들이 들어 올 수 있는 취업 환경을 만드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며, 기업인들에게는 정신적으로 용기를 북돋아주고, 정부는 제도적으로 기업이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모색해 나가며 기업인들의 기를 살려줄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정부와 지자체가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Q. 일문구의사 선양사업회 이사장님으로 계신데,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소감이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A.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있는데, 저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일문구의사(一門九義士)는 한 집안에서 9인의 항일의사를 배출한 가문을 뜻하며, 선조부 9명(류현석, 류치복, 류준석, 류영석, 류태석, 류명석, 류연풍, 류연청, 류연봉)이 독립운동가로 활동 했습니다. 류치복 선생은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각처에서 봉기하는 의병들과 같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신명을 다할 것을 결심하고 지역에 거주하는 유지명 송태식 등과 결의, 친족 8인 등과 더불어 1907년에 의병을 조직해 활동했으며, 이후 일본헌병한테 붙잡혀 류치복 선생은 즉결 처형을 당했고, 나머지 8인은 옥사하거나 옥고를 치른 후 형독으로 사망을 했어요. 이들은 광복 후에도 역사적 평가를 받지 못하다가 제가 지역의 원로, 마을 노인들의 증언 등 자료를 수집해 공적서를 제출하는 등 현창사업을 벌여 1983년 국가에서 공훈을 인정을 받았으며, 1983년에는 그 공훈을 인정받아 대통령이 훈장을 수여하기도 했습니다. 올해는 2.8독립선언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고 있는데,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처럼 과거를 정확히 알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독립운동과 관련된 책자를 국민이 알 수 있도록 매년 책자를 발행하며 알리고 있습니다. 올해는 남북의 문제가 급진전 되고 있는데, 남북정상회담 뿐 아니라 북미간의 관계를 볼 때 과거 100년의 역사가 통일로 이어져야만 독립운동가들의 정신들을 올바로 세우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남북문제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기대하고 있는 만큼 북한의 자원들을 활용하고, 남북한의 경제 협력 관계가 이어져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많은 뒷받침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Q. 지난해 완주군수 경선에 도전하고 공천 과정에서 잡음이 많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공천 결과에 대해 아쉬운 점은 없으신가요?

A. 공천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지만 고향인 완주에 대해 더 많은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우리 지역을 위하는 마음에서 다양한 노력을 해야겠죠. 모든 것은 현장에 답이 있듯이 탁상공론이 아닌 현장이 중심이 되는 일을 하기 위해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이려 하고 있습니다.

Q. 향후 활동 계획에 대해 한 말씀 해 주신다면?

A. 지금 농촌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농촌에 귀농귀촌 가구가 많이 온다고 하지만 일손이 굉장히 부족한 것이 사실이죠. 그렇기 때문에 농촌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많이 고용하고 있는데, 다문화 가정이 빨리 농촌에 정착할 수 있도록 이에 대한 방법을 모색할 것이며, 젊은 사람들이 농촌에 눈독을 들이고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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