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직격인터뷰>배우 박은수 편.

▲ 최근박은수씨가 지인행사장에서 노래를 열창하고있다@시사연합신문

◆후배 양성과 연출자로 준비 중...좋은 작품으로 팬들께 보답할 터...

80년대, 우리에게는 잊을수 없는 한편의 인생드라마가 있었다. 청년들이 가난을 떨쳐버리려 도시로 도시로 몰리고 시골에는 나이든 분들만 남았던 시절...

우리내 가슴을 적셔주던 이야기. 마을 청년 ‘일용이’의 돌출 행동이 이슈가 됐던 그 드라마“전원일기”오늘 우리는 그 주인공“자존심강한 남자 박은수”를 만나러 간다.

■ 안녕하세요. 독자 분들께 그리고 박은수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인사한 말씀 주시죠...

- 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이렇게 인터뷰하니까 설레네요 10년 만에 하나.. 반갑고요.

일용이 및 여러 이름이 있는데 지금까지 기억해주시는 분도 많고, 눈인사 하시는 분도 많은데요. 반갑습니다. 앞으로 좀 더 절친하게 자주 뵙기를 바라겠습니다.

■ 최근 선생님 근황에 대해 궁금합니다.

- 최근의 근황은 글쎄요.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긴 그렇지만 내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근신을 하고 있습니다. 근신을 10년 가까이 하고 있는데 지금도 제 자존심으로. 제가 상당히 자존심이 센데, 제 자존심으로 먼저 뭘 하겠다 나타난다 하기가 선뜻 제 자신이 용서가 안 되네요 그래서 조용히 있는 상황입니다.

■ 대한민국 최고의 국민드라마 ‘전원일기’가 히트하게 된 배경은 무엇입니까?

- 글쎄요. 히트하게 된 배경은 시청자들이 어떻게 봐주시고 어떻게 공감대를 느끼시냐 에 따라 큰 차이가 있겠죠. 처음 시작할 때 저는 드라마라고 생각 안했어요. 처음 시작할 때 재밌는 얘기가 있는데요. 그 당시에 일용이라는 배역을 하라고 연출자와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일용이가 뭔가 봤더니 김 회장 댁 옆집에 사는 뭐 그런……. 머슴도 아니고 뭐 그런 배역이에요... 그 때만해도 제가 좋은 배역 많이 하고 그럴 때인데, 이게 뭔가 싶어 반갑지 않게 얘기했죠. 어머니도 김수미씨였는데 그때의 김수미씨는 그냥 그랬어요(미안하지만). 연출자에게 여러 가지로 선뜻 내키지 않게 말씀을 드렸죠. 그러니까 수필드라마라 얼마 안 나갈 거니까 아무소리 말고 하라고 그래서 시작을 했죠. 차범석 선생님이 처음 오픈하시고 몇 개월 안돼 김정수씨로 작가분이 바뀌셨어요. 전원일기를 이 분이 쓰니까 본격적인 드라마가 되는 거예요. 잘 쓰시더라고요. 그래서 자기들끼리 이야기 했겠죠. 박은수는 위험하니까 항상 배타러 간다, 서울간다 복선으로 깔아라. 제가 언제 안 나올지 모르니까 미리 깔아 놔라...

제가 처음 시작할 땐 일용이는 항상 배 타러 갈 수도 있고 서울로 나갈 가능성이 있는 시골에 안주하지 못하고 뜰 수 있는 인물로 설정이 돼서 시작을 했어요.

그런데 반응이 좋고 사람들이 좋아해주시니까, 그래서 완전히 사랑하는 배역이 되고 작품이 되고 지금까지 가슴 속에 남아있습니다.

■ 전원일기의 ‘일용이’역 본인과 닮은 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 그건 오래하다보니까 작가가 제 성격에 맞춰서 써주시는 것 같아요.

저는 성질이 불같고 하니까 배역이 자꾸 그런 식으로 내 성격에 맞춰서……. 나는 그냥 주어지는 대로 읽고 연기하는데 작가선생이 박은수를 상당히 옆에 갖다 두고 붙여가면서 인물을 만들어주신 것 같아요. 딴 드라마처럼 대사를 외우고 이런 게 아니라 가면 저절로 외워지고 쉽고, 대본 안보고 녹화날 아침에 가서 바쁠 때는 훑어봐도 대사NG안낼 수 있게 입에 잘 붙고 그랬습니다. 상당히 편하게 일용이라는 역할이 와 닿았었습니다.

■ 전원일기의 식구들은 자주 보시는지요? 50~60대 팬들이 아직도 아련한 향수에 젖어 있습니다. 아시는 대로 전원일기 식구들 소식 좀 전해주시죠?

- 네 거의 알죠. 최불암 선배님, 김혜자 선배님, 김수미씨도 그렇고, 김수미씨 얘기를 잠깐하자면, 그 양반이 엄마라고 해서 미쳤구나. 했어요. 저도 물론 어려보이지만, 시작할 때 사실 거기에 대한 불만도 있었어요. 그런데 하다보니까 김수미라는 배우가 나를 자극 시키더라고…….

상당히 센시티브하고 아주 좋은 배우구나, 애드리브도 상황에 맞춰서 잘 하고 참 좋은 배우이구나, 내가 깜짝 깜짝 놀랐습니다. 김수미씨에 대해서 이런 기억이 있고요, 그 다음 대표적인 연기자로 김혜자씨는 이런 적이 있었어요.

김혜자 선배님이 전원일기 그만두고 싶다고 했을 때, 제 생각에는 김혜자 선배님이 예뻐 보이는 배역을 하고 싶었는데 전원일기 어머니역이 맘에 안들었나봅니다. 시골어머니 역은 지겹다는 식으로 말씀하시곤 하셔서… 김혜자씨는 서구적으로 생기고 아주 물씬한 한국 어머니의 상은 아니란 말이죠. 대한민국의 어머니는 강부자씨나 특정된 인물상이 있지 않습니까?

전원일기의 어머니를 했기 때문에 지금은 어머니로 굳혀지고 연기력이 출중해서 만들어놓은 걸 왜 거부하셨는지… 예쁜 배역은 예쁜배역대로 하고 전원일기는 그 배역대로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 2019년 지인들과 송년모임 후 기념사진(좌측뒤줄2번째 박은수씨)@시사연합신문

■ 올해로 데뷔 몇 년째 되셨나요?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대표적 작품은 무엇입니까?

- 모르겠는데요. 저는 제 나이도 모르겠고 데뷔 년도도 모르겠고, 하도 오래돼서요.

저는 배역을 많이 안했어요. 연기를 못해서 그런지 많이 안 시키더라고요. 하여튼 대장금, MBC에서 베스트셀러 극장이라는 한편의 드라마인데 그게 한시간반짜리 영화를 만들었어요. 베스트셀러극장에서 제가 주인공을 제일 많이 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열심히도 하고...

특별히 어떤 작품이라고 하면 뭐니 뭐니 해도 가장 기억에 남는 대표적 작품은 전원일기죠. 그리고 대장금 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 MBC 방송국1기로 연기에 입문하셨던데요. 꽤 오래 전 일입니다. 응모하게 된 동기와 당시 상황을 말씀해주신다면?

- 제가 연극 한창하고 있을 때인데, 명동 근처에 제 선배들이 많이 계셨어요. 그 당시에 드라마, 연극하면서 왔다 갔다 했어요. 그런 상황에서 이순재씨 등, 큰 선배들이 나를 눈여겨보신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들었어요. 저도 그걸 느꼈고요. 연극을 열심히 했죠. 그러던 중 유치진이라는 선생님이 계셨는데 MBC에서 탤런트1기생을 뽑는다고 시험한번 보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제가 그 전에 시험을 한두 번 떨어진 기억이 있어요. 그 당시 TBC 탤런트를 뽑는다고 해서 갔는데 사람들이 많았어요. 한참 기다리다가 제 차례가 되니까 심사위원들이 노래를 해보라는 거예요. 가수가 아닌 나한테 노래를 시켜서 안했어요. 그냥 나왔죠. 이상한 사람들이다 생각하고...

그래서 시험에 대한 흥미를 못 느끼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1기생이니까 시험을 봐라 하시는 거예요. 1기생이라는 말에 혹해서 갔죠. 덕성여대인가 그럴 겁니다. 거기에 사람들이 꽉차있는데 어쩜 그렇게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만 모여있거야. 우리는 지질해가지고…

이거 잘못 왔다, 그냥 갈까 했는데 같이 간 사람이 ‘이왕 왔으니 원서라도 내고 가자’ 해서 원서를 내고, 신경도 안 쓰고 기대도 안하고 시험을 봤죠.

처음에 차범석 선생님이 제 담당이야. 그 양반이 입이 거칠어서 욕하면서 “너 왜 왔어, 연극하지 여긴 왜왔어” 라고 하셔서 뻘쭘했어요. 그리고 1차가 됐어요. 그게 되니까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내가 뽑혔다는 게 자부심이 생기더라고요.

그 당시 최고의 영화배우, 탤런트, 모델 이런 사람들이 다 왔어요. 내가 저런 사람들 사이에 어떻게 끼냐고 했는데, 그 사람들은 안되고 우리가 2차되고 그 다음부터는 연기니까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마지막으로 면접을 보는데 면접날 명동에서 당구치고 놀다가 면접 시간을 까먹었어요. 한 2시간정도 지났어요. 명동에서 인사동까지 뛰어 도착했는데 내 차례 지나고 한사람 남았더라고요. 그런데 입구에서 ‘늦었으면 시험 못 보죠’ 그러면서 ‘미안합니다’하면서 막는거예요. 그래서 ‘얘기 좀 해주십시오’ 하니까, 들어오라고 하는 소리가 안에서 들리더라고…

그때는 놀다가 들어갔으니 청바지에 운동화신은 모습을 보고 심사위원들이 ‘깡패가 왔어, 우린 깡패 뽑는 거 아닌데’ 하시는 거예요. 틀렸구나 싶었는데 나중에 신문을 보니 이름이 있더라고요... 그때 함께 합격한 배우들이 개성만 강했던 나를비롯해 임현식, 조경환 등 얼굴이 비슷한 몇사람 있죠..(웃움)

뒷 이야기지만, 웃기는게 잘생긴 사람은 하나 없고 썩 잘생기지 않은 사람이 쭉 있더라고요. 요즘은 미남 미녀가 대세지만 그 때는 잘생기고 예쁘면 대중문화의 깜이 못 되는 걸로 알고 있었어요. 최불암씨 처럼...

항상 우리 곁에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 배우를 하는 시절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됐을 거예요.

◆우리가 살다보면 좋은일 하고 봉변당하는 일이 종종생기곤 한다.   특히 연예인들은 처음본 사람 일지라도 상대방이 친절하게 다가오면 긴장을 놓곤해서 난처한일에 처하는데 이와 유사한 일을 당해 10여년 입을 닫고 지낸 '일용이' 박은수씨!

자존심때문에 법정에서 하지못했던 당시 스토리를 들어보자.

■ 조금시간이 흘렀지만 안 좋은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팬들의 실망이 좀 컸었을 것 같아요. 당시 상황에 대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많을 것 같은데요?

- 저는 이게, 예를 들어서 언제TV프로를 하게 되거나 계기가 있으면 방송에 나가서 제대로 하려고 했어요. 나는 아니다 나는 억울하다 이건 너무 흔한 말이고 사람들이 믿거나 말거나 이고…….

나는 진짜 누구한테 돈 십만원, 돈 백만원 한번 빌린 적이 없는 사람인데 없으면 굶는 스타일일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사기라는 얘기를 듣고 이게 뭔가 싶어 보니, 전원일기 끝나고 얼마 안돼서 아는 건물주인이 부업으로 술집을 한번 해보라고 해서 갔었어요. 400평이나 되니까 너무 넓더라고요. 돈 신경 쓰지 말고 월세는 주고 싶은 대로 주라는 말이 거짓말인 줄 모르고 계약을 했어요.

너무 평수가 커서 인테리어 하는데도 엄청나게 돈이 들었어요. 이왕지사 손을 댔으니 있는 거 없는 거 다 해가지고 도배를 했어요. 난 술장사 할 줄도 모르고, 결국 아들을 호프집 사장으로 앉혀놓고 했어요. 그런데 도저히 뭐…….

거기다 워낙 평수가 크니까 알바친구들도 많고, 가수들도 대여섯 명씩 매일 와서 노래 부르는 친구들도 있고, 하여튼 격식은 다 갖추고 하는데, 돈이 새는 건줄 모르고 6~7개월 만에 40억이 날아갔어요. 집세하고 인건비 뭐 등등... 이건 아니다 싶어 손해본 건 손해본거다 하고 문을 닫고 쉬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날 어떤 선배 하나가 바람쒤겸 필리핀을 갔다오자고 해서 다녀왔어요. 그 때 소개를 받은 사람이 자기 아들이 조감독을 하고 있는데 나보고 자기 아들을 데리고 영화사를 만들어서 하라 그래요. 난 지금 술집하다 날아가서 돈이 하나도 없다고 하니까, 그 사람이 돈 신경쓰지 말고 하라그래요. 그 때 그 쪽말로는 1조, 2조 그러더라고... 난 들은척도 안했어요.

그후 필리핀에 있다 한국에 왔는데 계속 연락이와요. 그리고 그 후 청담동인가 논현동인가 하는곳에 75~85평짜리 허름한 건물을 얻었고 3억정도 들여 인테리어를 했어요. 이 친구가 돈 걱정하지 말래서 믿고 인테리어를 끝냈는데 이친구 1년이 넘도록 돈을 안주는 거예요. 그래서 뭐냐니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더라구요. 그리고 1년 반 동안 소식이 없다보니 업자들이 날 고소한거예요. 너무 억울해서 재판때 판사한테 얘기했어요 이렇게 됐다.

그런데 판사가 하는 말이 “그래도 당신이 당신 주머니에 돈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한건 잘못했다” 이거야. 그래서 증인을 세웠어요 돈을 주기로한 친구를……. 그대로 이야기 하더라고요. 내가 돈을 대려고 했는데 자금사정이 이래서 조금 기다리라고 했다고... 그리고 끝이에요.

내가 돈 없이 시작했으니 내 죄가 된거죠. 너무 갑갑하더라고요. 그리고 그때가 추석 연휴였을거예요. 5일 만에 나왔는데 아니5시간이면 뭐해. 이미 전 세계적으로 소문이 다 났는데.. 내가 아닙니다 아닙니다 할 수도 없고 기회가 있으면 밝혀지겠지 했는데, 그게 안 되더라고요. 그 땐 사기당해서 집도 다 잃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니까요. 그러던 와중에 또 일이 터졌어요. 누가 안성에 예술인촌을 만들겠다고 나 보고 조언 좀 해달라고해서 갔어요. 웬 젊은 부부라고 하는 남녀가 나타서 밑에 집을 짓고 있으니까 구경이나 하라고 해서 내려가는 길에 봤는데, 다 빈집이더라구요. 저보고 홍보나 조금 해주고 그냥 와서 살라고 그래요. 그리고 그쪽이 원하는 카탈로그나 하나 찍어주고 그 값으로 대신 그집 얻어서 살았어요. 집도 없던 차니까 잘됐다 싶었어요. 그러던중에 날 거기에 앉혀놓은 사람하고 입주자하고 싸움이 났어요. 그런데 날 걸고 넘어진 거예요. 박은수도 그 집주인과 한패라고...

후배 사무실에 앉아서 연합뉴스TV를 보는데 밑에 자막에 박은수가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연합뉴스에 전화 했더니 제보가 들어왔으니 어쩔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박은수인데 물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기사를 내느냐, 빨리 내리라고 했죠.

그래서 또 다시 엉뚱하게 전원주택 사기가 된 거예요. 그 후 뒤를 캐보니 어떤 기자가 거기서 손해본 사람하고 이야기하다가 박은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쓴 거예요. 나중에 명예훼손, 무고로 고소했죠. 그 후 연합뉴스 기자가 대면하자고 해서 보니까 변호사를 데려왔더라고요. 그래서 “당신들이 장난으로 던진 돌에 맞아서 죽는 사람도 있고, 다치는 사람도 있는데 세상에 기자라는 사람이 이렇게 막 써야 되겠느냐. 정정기사 내고 내가 잘못 알았다 박은수씨 명예를 훼손해서 미안합니다”라고 정정기사내면 용서하겠다 했더니 쓰겠다 해서 풀어줬습니다. 그런데 그 기자 정정기사랍시고 써 온 내용이“검찰에선 아무런 근거가 없고 죄가 없다. 그렇게 검찰에서 판단을 했다 ”라고 써 온거예요. 물론 맥락을 따지면 그것도 무죄지만 “내가 잘못썼다”라고 써주길 바랐는데 절대 그렇게 쓰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사기제보 기사를 낼 때는 한 면에 크게 내더니 정정기사는 조그마하게 내서 ‘읽으면 읽고 말면 말라는 식’으로 냈는데 지금까지 너무 속상합니다.

■ 동료 분들께 선배로서 사회활동에 대한 메시지하나 전해주시죠?

-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 크리스마스이브에 MBC 1기생 망년회 모임을 후배들이 주선해서 참석하여 간단하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처럼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말고 연기자는 연기만 열심히 해라. 우리는 아는 게 없으니까 절대로 조심해라” 그랬더니 웃더라고 사람들이…….

나는 내가 그렇게 당하리라곤 꿈에도 생각을 못했어요. 누가 감히 나한테 해코지 하겠나 생각했는데 천만의 말씀이었습니다.

■ 향후 활동 계획에 대해 궁금합니다.

- 지금까지는 연기가 천직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만, 지금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지금은 연기보다는 연출 쪽으로 나가서 제가 잘 하는 연기지도를 통해서 좋은 연기자를 스무명 정도 양성하여 우리가 속해있는 시스템에서 연기도 시키고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게 제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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