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국유단)은 백마고지에서 발굴된 유해의 신원을 고(故) 김용일 이등중사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국방부에 따르면, 금년 7월 25일 국유단과 비무장지대 유해발굴을 시행 중인 육군 5사단 장병들의 노력으로 발굴된 6·25전사자의 유해가 함께 발굴된 인식표 덕분에 고(故) 김용일 이등중사로 확인됐다.

이로써 2000년 유해발굴사업이 시작된 이후 201명의 6·25전사자 신원이 확인되었으며, 백마고지에서 발굴된 4명의 전사자 유해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특히, 고 김용일 이등중사의 유해는 만년필 유품에 각인된 성명 덕분에 200번째로 신원이 확인되었던 고 편귀만 하사와 같은 호에서 70년 동안 함께 있다가 발굴되어 연속으로 신원이 확인되었다.

고인은 국군 9사단 30연대 소속으로 백마고지 전투('52.10.6.~15.)에 참전했다.

백마고지 전투는 강원도 철원 일대 백마고지를 확보하기 위해 국군 9사단이 중공군과 7차례나 고지의 주인이 바뀔 정도로 6·25전쟁에서 가장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전투로서, 9사단은 12차례 공방전 끝에 백마고지를 확보하는데 성공하였지만 고인은 이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국방부는 이번 신원확인은 발굴과정에서 고인의 인식표가 발견되면서 신속하게 이루어졌다고 전했다. 고인의 유해는 최초 5사단 유해발굴 TF 강훈구 중사가 경사면에서 작은 뼛조각을 발견한 것을 시작으로 대대적인 발굴이 이루어졌고, 경사면 아래쪽을 노출하자 개인호에서 웅크린 자세로 가슴 부위에 팔을 모은 모습의 완전유해가 발견되었다.

정밀 노출한 유해는 머리뼈 위에 철모가 덮여져 있었고 발뼈에는 전투화 밑창, 정강뼈에는 고무링이 둘러매어 있는 등 발굴 유품이 생전 착용 위치를 모두 유지한 모습이었다. 특히, 가슴 부위에 모아진 아래팔뼈 안쪽에서 고인의 성명이 선명히 각인 되어있는 인식표가 발견됨에 따라 국유단은 유해의 신원을 김용일 이등중사로 특정했다.

국유단은 “전사자명부와 보훈 기록 등을 기초로 유가족을 찾아 친손자 김정덕 님의 유전자 시료를 채취했으며, 정밀 분석을 통해 유해와 친손자의 가족관계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고인은 충청북도 괴산에서 6남 6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인근 마을에 살던 배우자와 결혼하여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지만, 막내 딸의 출생 한 달 만인 1952년 3월 육군에 입대하여 9사단 소속으로 백마고지전투에서 전사했다.

고인의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유가족 자택에서 치러진다.

고인의 신원이 확인되었다는 소식에 친손자 김정덕 님은 “아버지가 3살 때 할아버지가 입대하셔서 기억에는 없으셨지만 엄청 보고싶어 하셨는데, 손자인 제가 장손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어서 기쁘다”며 소회를 전했다.

고 김용일 이등중사의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30일 경기도 부천시 소재의 유가족 자택에서 고인의 참전 과정과 유해발굴 경과를 설명하고 ‘호국의 얼 함’을 유가족 대표에게 전달하는 등의 순서로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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